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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국제화 2 ; 독일 표현주의

by Golden C. 2021. 8. 13.

모더니즘의 국제화 2 ; 독일 표현주의 

 

 

 

오늘은 파리를 벗어나 국제화된 20세기 초기 모더니즘 두 번째 글로, 독일의 표현주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모더니즘의 국제화 1 ; 이탈리아 미래주의, 러시아 구축주의

 

 

독일 표현주의

20세기에 들어서자 독일에서는 화가의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미술 이론이 활발히 등장했습니다. 화가의 내적 감정에 충실한 것은 근대 이전 독일 미술의 주요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화가들은 회화적 규범, 비례, 해부학 등을 다른 나라들의 화가들만큼 중요시 여기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를 이어받은 독일의 근대 화가들은 개인의 주관적 표현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것을 이어갔습니다.

 

미술은 실제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화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1905년부터 1930년까지 독일 미술계의 주류로 활동하면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과장된 색채와 형태를 취했으며 자신들을 표현주의자(Expressionists)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거슬로 올라가면 고흐와 고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독일 표현주의는 다리파(Die Brücke)와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다리파

다리파는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다리파는 독일 아방가르드 화파의 선구자였습니다. 다리파는 자신들이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겠다는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들의 활동지는 베를린과 드레스덴이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극도의 왜곡된 색채와 형태를 보였으며 관람자에게 매우 강렬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모여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키르히너, <베를린 거리 풍경>, 1913, ⓒ 베를린 다리파미술관

 

다리파를 대표하는 화가에는 키르히너와 놀데가 있습니다. 키르히너는 주로 거리와 술집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매우 거친 느낌을 주었습니다. <베를린 거리 풍경>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또 한 명의 다리파 화가는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입니다. 그는 서구 문화를 타락한 것이라고 정하고, 이를 정화하기 위해 아프리카나 태평양 제도의 부족 미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인물들은 과장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색채와 붓놀림 또한 충격적일 정도로 거친 것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붓을 던지거나 하는 기행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청기사파

다소 거칠고 어둡고 기괴해 보이기도 하는 다리파와 달리 보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보인 청기사파도 독일 표현주의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들 또한 아방가르드한 표현주의 유파로서 1911년 즈음 뮌헨에서 결성되었습니다. 청기사파를 이끈 화가는 칸딘스키입니다.

 

칸딘스키, <구성 8>, 1923년, ⓒ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칸딘스키는 객관적인 형태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순수 추상화를 완성해 낸 최초의 화가입니다. 그는 우연히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밝은 색채와 색면의 효과를 발견해 냈습니다. 거꾸로 놓인 그림에서 그림의 내용과 상관 없이 색채와 색면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발견은 그를 추상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기하학 무늬를 배열한 <구성>과 이런 법칙과 의도가 전혀 없는 완전 무의식적인 <즉흥> 시리즈를 그렸습니다. 1910-14년 칸디스키는 구상적이고 재현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 구성, 즉흥 등은 음악적인 요소가 짙은 제목입니다. 이는 미술도 음악처럼 묘사적인 언어의 설명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1912년에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예술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습니다. 그는 물질주의에 반하는 정신적인 것으로서 신지학에 심취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예술은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내적인 필요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기사파의 또 다른 화가는 파울 클레(Paul Klee, 1870-1940)입니다. 그는 스스로 색채에 사로잡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추상화는 선과 색으로 경쾌하고 강렬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는 사물의 형태를 단순화하여 모티브들이 이중성을 갖도록 했습니다. 그는 합리주의를 극도로 배척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합리성, 객관성보다 상상력이었습니다. 그는 상형문자, 선사시대 기호, 고대문자에 심취했습니다.그의 작품 <푸른 밤>은 밤하늘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이용하여 화면을 여러 색면으로 나누었고, 화면의 선들은 마치 별자리나 고대문자 같습니다. 그의 그림은 추상성과 경쾌한 색채의 사용, 상상을 기반으로 한 점 등으로 마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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