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주의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
1901년에서 1906년까지 후기 인상주의 전시회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세잔, 고흐, 고갱 등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새로움은 화가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강렬한 색채는 야수주의의 탄생에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서양 미술은 선을 중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화의 탐구 대상은 색채로 옮겨왔습니다. 야수파 화가들은 객관성을 지양하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고 개인의 삶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리고 원시미술 또한 그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색채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화가들이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색채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야수주의는 현대미술의 탄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야수주의는 한동안 화단을 풍미했지만 1907년 즈음에 화가들이 색채가 아닌 입체감, 중량감, 선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그 영향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야수주의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통해 이후에 등장하는 큐비즘 등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야수주의 주요 작가
마티스(Henri Matisse)
마티스는 야수파의 대표 화가입니다. 마티스의 작품 변화 양상은 야수주의의 변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티스의 초기 작품은 조르주 쇠라와 같은 점묘법과 색분할법을 보여줍니다. <해안가에서(1904년)>과 <사치, 고요, 관능(1904-5년)>은 마티스 점묘화의 예를 보여줍니다. 그는 <초록색의 선(마티스의 부인, 1905년)>에서 색채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줍니다. 중앙의 여인과 배경은 같은 색으로써 입체감이 없지만 오른쪽의 주홍색 배경은 앞으로 나온 것처럼 원근감을 형성합니다. 서양미술에서 원근감을 표현하는 것은 선이었습니다. 이런 마티스의 실험은 이제 색채가 원근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마티스는 <생의 기쁨(1906년)>에서 야수주의와 차별점을 형성하면서 자신만의 양식을 이루어냈습니다. 풍경을 배경으로한 인물화인 이 작품은 세잔의 영향을 보이지만 이상향에 대한 주제는 티치아노나 푸생처럼 더 오래된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고갱의 색면과 아라베스크 문양, 율동성을 표현했습니다. 마티스는 이제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색면 연구에서 벗어나 선에 주목했습니다. <청색 누드(1907년)>에서 그는 율동적인 선과 색채를 이용하여 입체감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모리스 드 블라멩크(Maurice de Blaminck, 1876-1958년)
블라멩크는 매우 극단적인 화가로 유명합니다. 그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했습니다. 1901년에 개최된 고흐의 전시회에서 그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는 물감을 매우 두껍게 바르는 방식으로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서로 다른 생상을 병치하여 매우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앙드레 드랭(A. Derain, 1880-1954년)
드랭은 야수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매우 분해된 붓질로 그림을 그렸고 원색들을 주로 이용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붓터치를 이용하여 그림에 운동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의 초년작들은 야수주의, 초기 입체주의, 아방가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들은 다시 아카데믹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년)
뒤피의 그림은 매우 경쾌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아기자기하고 대중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는 음악회, 정원의 파티, 해변가 등 상류사회의 일상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했던 그의 작품은 경쾌해 보이기도 합니다.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는 그림들은 대부분 표현 또한 정열적이거나 강한 것이었고 주제도 풍자를 위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뒤리의 그림은 경쾌한 색채로 자신만의 화풍을 이어 나갔습니다. 뒤피의 그림은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뒤피의 업적은 야수주의의 대중화에 있습니다.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년)
루오는 야수주의 화가들과 교유하면서 강렬한 색채의 사용 등 그들의 양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제는 보다 무겁고 고통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뚜렷했습니다.악을 대변하는 무리들은 그의 그림 안에서 강렬한 붓질에 의해 다루어졌습니다. 그의 그림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조각된 색채의 파편들과 두꺼운 윤곽선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가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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