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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 미술;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현

by Golden C. 2021. 8. 5.

상징주의 미술

 

 

 

1880년대에 들어와서 파리의 예술가들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문화는 합리적, 과학적 그리고 실용적인 사고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예술가들은 여기에 정신적인 면과 종교적인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실증주의와 물질주의를 탈출하고자 했고 낭만주의에 주목했습니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자연을 모방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선, 색채, 형태를 사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원시미술, 중세, 이집트, 아시아, 민속미술 등 다양한 문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성이 아닌 감정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인간이 원래 갖고 있던 감정과 관념에 몰두하였습니다. 상징주의자들은 신비주의나 순수한 표현에 관심을 높였으며 타락한 세상에 대한 절망감으로 인해 세기말적 비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데카당과 탐미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상징주의 대표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f Moreau, 1819-56)

귀스타브 모로는 문학, 철학, 고고학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지학, 고대 신화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들라크루아와 앵그르의 양식을 따르는 사세리오의 제자로서 전통적인 관학적 미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양식 또한 고전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과 고통, 그리움이 나타나는 분위기는 여타의 관학파 화가들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상징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여성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살로메인데, 모로의 <살로메>는 팜므파탈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살로메의 주제는 낭만주의에서 자주 이용된 것이며, 모로의 <살로메>는 앵그르의 양식을 따라 신고전주의적인 면을 보입니다. 그리고 작품의 분위기는 상징주의적입니다. 이처럼 모로의 <살로메>는 양식적으로는 19세기 양식을 보이는 종합적인 작품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는 모로의 미지의 세계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르동(Redon, 1840-1916)

 

르동, <오르페>, 1913년, ⓒ 클리브랜드미술관

 

르동은 낭만주의 문학과 고야의 주제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사람의 얼굴을 가진 곤충, , 떠 있는 눈, 잘린 사람의 얼굴처럼 꿈이나 초현실 속 에서 볼 수 있는 모티브들을 등장시켰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에칭, 목판화, 석판화 등 거의 판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에드가 알란 포우에게: 무한대로 여행하는 이상한 풍선과 같은 눈(1882)>에서 눈은 전통적인 의미나 형상과 확연히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르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독자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에 의해 창조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 이것이 가장 순수한 상징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유럽 상징주의

1890년대에 들어서면 상징주의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신하여 프랑스를 넘어 독일,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예술가들은 물질주의로 인한 위기의식을 느껴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였고 세기말적인 비관주의나 데카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파악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심리, 영혼 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세기말 사상은 북유럽의 화가들에 의해 격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북유럽 상징주의 화가

앙소르(Ensor, 1860-1949)

앙소르는 벨기에의 화가입니다. 그는 가면과 인형을 통하여 기괴하고 풍자적인 작품을 그렸습니다. 마스크는 사람의 정체를 숨길 수 있으므로 등장인물의 숨겨진 욕구나 의식을 표현할 수 있었고 위선과 부패를 뜻했습니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8-1944)

 

뭉크, <절규>, 1893년, ⓒ 오슬로 국립미술관

노르웨이 화가 뭉크는 북유럽 화가들 중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화가일 것입니다. 그는 강한 개성과 독창성으로 세기말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했습니다. 그는 다른 상징주의 화가들과 달리 모호한 신비로움을 배제하고 인간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작품의 주 모티브는 죽음과 병입니다. 그의 주제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소외감과 두려움 등 현대인의 내면의 갈등이었습니다. 그의 여인에 대한 이미지는 창조자이자 파괴자이며 성녀이자 악녀였습니다. 그는 독일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년)

클림트는 원래 비엔나의 벽화가였으며 그의 양식은 관학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르누보의 영향 이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전환점이 된 작품은 <충족(1905-1908)>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고통, 두려움, 방황을 일부는 사실적 표현으로, 일부는 추상적 표현으로 복합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과거의 양식으로부터 단절을 주장한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색채는 화려했고 선은 세밀하고 자유로웠으며 주제는 에로틱하고 구성은 입체감보다 평면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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