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바로크 미술
17세기 전반기 프랑스 미술은 조르쥬 드 라 뚜르와 루이 르 냉의 사실주의, 니콜라 푸생, 필립 드 상파뉴, 시몽 부에 등의 고전주의, 절대군주 루이 14세 통치 초기의 궁정 바로크 미술로 특징지어집니다. 르 냉 형제, 조르주 드 라 뚜르의 사실주의 회화는 북유럽스러운 한편 이탈리아 카라바지오의 영향도 함께 보입니다.고전주의 회화는 이탈리아의 안니발레 카라치의 영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집권 후에 프랑스를 포함한 전 유럽의 궁정문화는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궁전의 실내장식은 절대군주를 미화하도록 표현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유럽 미술의 중심은 프랑스로 이동했습니다. 증가하는 궁정 미술의 수요에 부합하기 위해 파리에 아카데미가 설립되었고, 초대원장 샤를르 르 브랭은 푸생의 고전주의적 표현과 이론을 토대로 아카데미즘을 확립했습니다. 프랑스의 궁정 양식은 베르사유의 궁전으로 완성되는데, 이처럼 화려하고 장엄하며 대규모인 궁정 양식은 회화, 조각 등 전 미술 분야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루이 14세가 통치하는 프랑스는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17세기 말기로 가면 로마가 아닌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 때의 프랑스 바로크는 사실주의, 고전주의, 궁정양식이 결합되어 Nicolas Poussin(1594-1665년), Claude Lorrain(1600-1682년), George de la Tour(1593-1652년), Louis le Nain(1593-1643년)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이 18세기에는 장식성과 섬세함을 특징으로 하는 로코코 양식으로 전개됩니다.
스페인 바로크 미술
스페인에서는 르네상스 미술 전통이 별로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영향이 적었으며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의 바로크를 수용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스페인의 바로크 회화는 이탈리아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받았으며 강렬한 명암 대조, 자연주의적 표현, 어두운 색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종교화는 인물들의 고통스럽고 어두운 면이 강조되었으며, 이 특징은 이후 고야, 달리, 피카소로 이어지는 그로테스크함과 파괴스러움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스페인 미술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띄지만 신체의 세부 묘사에 있어서는 사실주의적 특징을 보입니다. 스페인 미술은 성스러운 순교자들을 그리면서, 그들의 고통을 극도로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어두운 모습에 집중했습니다. 17세기 당시에 쇠락하는 국력에 대한 절망, 절대왕정의 권위, 스페인만의 열정이 한 데 섞여서 기괴함과 신비함을 주는 스페인 회화는 이 바로크 시대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년)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궁정화가로서 명예와 경제적 성공을 모두 이룬 화가였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620년대 말 이후부터는 티치아노와 루벤스의 영향을 받아서 보다 유려한 화풍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세비아의 물장수, 1623년>는 그의 초기작을 대표합니다. 평범한 인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은 카라바지오의 영향입니다. 그리고 세계적 걸장으로 뽑히는 <Les Meninas, 1656년>는 초상화의 일종이지만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의 면모를 보여주며 풍경과 그룹 초상화가 결합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 속 그림을 보고 있는 인물은 거울에 비친 관람자이면서 왕과 왕비입니다. 이는 매우 관습 파괴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빛의 효과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바로크 미술
엘리자베스 1세의 집권기인 16세기 후기 영국의 미술은 엄격한 청교도주의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이시기 회화는 거의 초상화에만 제한되었습니다. 영국만의 독특한 전통이 찰스 1세의 세련된 취향을 만나면서 외국 화가들을 불러들여 훌륭한 초상화가 다수 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영국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는 안소니 반 다이크입니다. 당시 영국의 분위기는 자국 화가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찰스 1세는 안소니 반 다이크를 초빙하여 그를 후원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에 체류하면서 바로크적인-화려하고 세련된 초상화를 제작하였습니다. 반 다이크의 초상화 속에서 찰스 1세는 왕이 아니라 점잖은 귀족 신사처럼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 찰스 1세는 이상적인 군주로 보이도록 표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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