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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Rubens)의 생애와 작품세계2 - 작품세계

by Golden C. 2021. 7. 22.

바로크 미술과 루벤스

 

 

 

바로크 미술은 대규모의 종교화를 제작하기 위해 로마에서 생겨나서 유럽 전역으로 퍼진 양식으로, 웅장한 스케일, 극대화된 효과, 고도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양식입니다. 유럽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의 위상을 회복하고 이를 선전하기 위한 미술로, 나라에 따라 특색 있게 전개되었습니다. 바로크 미술은 17세기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현재 네덜란드 남부와 벨기에 지방에 해당하는 플랑드르 지역은 가톨릭 영향권이었으므로, 개신교 영향권이었던 네덜란드 지역과 또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 지역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가톨릭 세력권이었기 때문에 화가들에게 종교화 제작의 환경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플랑드르 지역의 바로크미술은 제단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성당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화려하고 관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가 바로 루벤스였습니다.

 

사실 그는 플랑드르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궁정의 주문을 소화한 국제적 궁정화가였습니다. 그는 원근법과 완벽한 구조를 강조한 이탈리아 양식, 현실적인 질감을 구현한 북유럽미술의 특징을 모두 나타냈습니다. 이로써 양식에 있어서도 통합적인 국제성을 보인 것입니다.

 

 

종교화(제단화)

이탈리아 유학생활을 통해 명성을 얻은 루벤스는 앤트워프로 돌아와 브뤼셀 대공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교회를 장식할 대규모의 천정화와 제단화를 주문받았습니다.그의 종교화 중 <십자가를 세움(1610)><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1612)>는 그의 대표적 종교화로, 예수가 십자가에 세워지고 내려지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루벤스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동적으로 표현된 인물들,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 강렬한 명암 표현으로 인해 당시 관람자는 이 그림을 대하는 순간 이 성서 속의 장면에 압도되었으며, 종교와 교회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고취시켰을 것입니다.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 ⓒ 앤트워프 대성당, 벨기에

 

 

 

신화와 알레고리-고전의 구현

루벤스는 라틴어 능력과 고전 문학에 대한 식견이 풍부했습니다. 이는 그의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에서도 드러납니다. 책이나 다른 미술작품으로 대하던 글이나 화면 속 신화의 장면들은 루벤스의 손을 거쳐 화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림의 한 장면으로 신화를 표현하되, 등장인물들은 매우 역동적이고 관능적으로 구현했습니다. 특히 근육 등의 양감과 피부 표현의 생생한 질감은 인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이게 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그가 신화적인 인물과 요소를 그림 안에 배치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했던 알레고리 작품들입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유럽인은 계속된 전쟁 속에서 살고 있었고, 특히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1618년에서 1648년까지 종교 갈등에서 출발하여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된 30년 전쟁이 지속되고 있던 시기입니다. <전쟁의 공포(1638)><평화의 알레고리(1629~1630)>를 통해, 루벤스는 전쟁의 위험과 두려움, 평화의 안락함을 여러 상징물을 통해 표현하면서 유럽의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 그의 인물들은 역동적이면서 관능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했는데, 그의 탁월한 인체 표현 능력은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인 엘렌 푸르망을 그린 작품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녀는 유명한 미인이었으며 루벤스의 재혼 후 작품들에서 엘렌은 성모 마리아, 비너스, 삼미신 등 대부분의 미인 표현에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인물 표현과 미모의 모델의 조합으로 엘렌 푸르망의 누드화가 전해집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렸지만 부인에게는 죽기 직전에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언을 통해 이 그림을 판매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절대왕정의 화가

루벤스, <리옹에서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 © 루브르박물관, 프랑스 파리

 

당시는 왕권신수설을 들며 중앙집권적인 지배를 강화한 절대왕정의 시대였습니다. 절대군주들은 그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화려한 궁전을 건축했고, 왕을 위대한 존재로 묘사하는 초상화들이 유행했습니다. 신화 속 인물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은 루벤스의 작품들은 절대왕정의 궁정에서 매우 선호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리 드 메디치의 일생(1622-1626연작입니다. 마리 드 메디치는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기틀을 세운 앙리 4세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왔습니다. 그녀는 파리의 뤽상부르그 궁을 장식하기 위해 자신과 남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을 루벤스에게 주문합니다. 루벤스는 이 주문을 완수하기 위해 총 24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연작에서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는 신화 속 인물로 등장하였고, 곳곳에 신화 속 상징물들을 배치했습니다. 루벤스의 표현력,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왕가의 인물들을 신격화하기에 매우 적합하였으며, 왕권의 신성함과 강력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매우 선호되었습니다.

 

24점의 그림이 4년 만에 완성된 것은 당시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루벤스는 단기간의 작업 기간으로도 주문자를 만족시켰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공방 분업 시스템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앤트워프에서 공방을 운영하여 제자들과 함께 주문화에 응했습니다. 루벤스가 작품의 구상과 기본 스케치를 그리면 나머지는 제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그림을 그리고, 마지막 마감을 다시 루벤스가 하는 분업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는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전 유럽에서 들어오는 주문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며...

이처럼 루벤스는 바로크를 대표하며, 종교화, 초상화, 고전, 왕실 그림 등에서 당대 최고의 대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복 입은 남자>로 잘 알려졌지만 루벤스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거기까지 지면을 할애하기에는 너무 할 말이 많습니다. 물론, <한복 입은 남자>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지만 말입니다. 거기에 외교관, 공방 분업 시스템 까지 언급하다 보니 책 한 권도 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차후에 시간이 생기면 루벤스 작품집이나, 그에게만 지면을 할애한 책을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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