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기본 정보
본명: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생몰년: 1577년 6월 28일 – 1640년 5월 30일
출생지: 독일 출생, 앤트워프(Antwerp, 벨기에)에서 성장
대표작품: <십자가를 세움(Raising of the Cross, 1610년) 등 제단화, «마리 드 메디치의 일생(Le Cycle de Marie de Médicis, 1622년-1626년)» 연작, <한복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 1617년> 등
루벤스의 생애
화가와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시대의 상황까지 알아야 합니다. 루벤스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니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이 매우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모든 시대의 일은 수많은 개인, 사회, 국가의 역사가 한 데 얽혀 매우 복잡합니다. 그런데 제가 루벤스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다양한 책을 찾아보는 것을 보니, 이 시대의 유럽사가 특히 복잡하거나 아니면 제가 이 시기 유럽사에 아주 약한 것 같습니다. 너무 깊은 내용이 아니라 그저 수능 수준의 서양사를 살펴 보는 데에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을 보면 말입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 준비를 위해 보았던 EBS 강의에서는 유럽의 16~17세기를 종교개혁의 시대, 서유럽 절대왕정 시대(동유럽은 18세기)이며,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대로 알려주었습니다.
독일은 이 시대에 아직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았고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종교전쟁을 통해 독립했으며 벨기에는 1839년 독립 전까지 네덜란드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국경을 기준으로 16-17세기를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 의미는 있지만 당시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또한 '플랑드르', '플랑드르 화파' 등 이 '플랑드르'라고 하는 개념은 무엇인지도 헷갈립니다(이 지역은 지금의 네덜란드 남부, 벨기에 지역을 말하는 당시의 지명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루벤스의 출생과 성장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서 루벤스의 부모님 국적, 출생지, 성장 국가를 이해하기 이해 오랜만에 수험서를 열어 보았습니다. 루벤스의 국적은 현재 벨기에로 나옵니다. 그는 벨기에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고, 벨기에에서도 루벤스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이 루벤스 출생 이전에 살았고, 루벤스가 성장한 앤트워프(Antwerp)는 루벤스 출생 당시 벨기에가 아닌 네덜란드였습니다.
루벤스의 아버지 얀 루벤스(Jan Rubens)는 법률가였으며, 이 가정은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혼란 속에서 현재 독일의 지겐으로 잠시 이주했던 시기인 1577년에 루벤스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다시 앤트워프로 돌아와서 성장합니다. 그곳에서 카톨릭 신자로서 라틴어 학교에서 고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4세 때부터 여러 화가들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23세가 되는 해에는 그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안겨줄 8년간의 이탈리아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능력을 인정받은 국비 유학생 개념의 유학생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그의 인생을 변화시켜 준 가장 큰 원동력은 만토바 공작의 궁에서 궁정 화가로 활동한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나 자산가의 집에는 수많은 미술 수집품과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궁정화가로 지낼 수 있다면 여러 시대의 많은 미술품을 감상하며 모사를 통한 많은 연습을 할 수 있고 많은 화가들과의 교유도 가능했습니다. 당시 소수만 누릴 수 있었던 이 경험은 화가로서의 높은 명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다시 앤트워프로 돌아왔으며 그 지역을 다스리던 브뤼셀 대공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명문가의 딸인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했습니다. 결혼을 기념하여 제작한 <인동덩굴 숲의 루벤스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The Artist and His First Wife Isabella Brant in Honeysuckle Bower, 1609-1610)>이 있습니다.
화가인 루벤스의 경력에서 특이한 점은 그가 1623년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한 것입니다. 오랜 유학생활에서 습득한 외국어 능력, 라틴어 학교에서 배운 고전에 대한 폭넓은 지식, 궁정화가로 활동하면서 쌓은 유력 인사들과의 인맥은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데 아주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스페인 평화조약, 네덜란드 연방공화국-플랑드르 평화협정 체결에 역할을 했으며 외교관 생활에서 만난 왕과 귀족들로부터 많은 그림 주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1626년 그의 아내 이사벨라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1630년, 53세인 루벤스는 16세의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루벤스는 그녀, 그리고 그녀와 아이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640년 통풍이 악화되어 앤트워프에서 사망했습니다.
루벤스는 생애와 배경만 써도 글이 이렇게 길어집니다. 그는 이른 나이에 화가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고, 궁정화가와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등 인생 전체를 성공적이고 여유롭게 살았던 화가로 보입니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다음 글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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