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기본 정보
본명 :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생몰년 : 1606년 7월 15일 – 1669년 10월 4일
출생지 : 네덜란드
대표작품: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Doctor Nicolaas Tulp demonstrating the anatomy of the arm, 1632년경)>, <야경(The Nightwatch, 1642년)>, <자화상(Self-Portrait)> 다수 등
렘브란트의 생애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69년)는 네덜란드 레이덴(Leiden)의 부유한 제분업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레이덴은 대학의 도시였으며 그 역시 레이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대학에서의 학업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 역사화가의 도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5세에 경제 중심지였던 암스테르담(Amsterdam)으로 활동지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렘브란트는 초상화로 큰 인기를 얻으며 화가로 성공했으며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초상화로 명성을 얻으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을 이루었지만, 1642년 그의 첫 번째 부인이 사망하면서 렘브란트의 굴곡진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인이 사망하면서 큰 유산을 남겼지만 화가로서의 커리어는 이때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4년 만에 빚이 크게 증가했으며, 젊은 시절 성공으로 이룬 그의 집과 미술 수집품들은 경매로 처분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부인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완전한 파산을 면하고 만년까지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 역시 렘브란트에 앞서 사망했습니다. 이로 인해 렘브란트 인생의 마지막은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작품세계
렘브란트의 인생은 성공과 쇠락의 다양한 면을 보였지만, 이 점은 인생 만년까지 다양한 작품, 특히 자화상들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화상을 제작하기 위해 두 개의 거울을 이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고, 이 방식은 다른 작품들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자화상들은 이런 면밀한 탐색으로부터 얻은 깊은 표정뿐 아니라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이라 불리는 강렬한 빛의 명암대비를 보이는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빛과 어두움의 대비는 그의 대표작인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경), <야경>(1642년)에서도 보입니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이 작품은 툴프 박사가 7명의 학생들에게 해부학 강의를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등장하면서 각자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작품들을 개인 초상화의 단체 버전인 단체 초상화라고 하는데, 17세기 당시 네덜란드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림의 종류였습니다. 이 그림은 총 4점의 렘브란트 제작 단체 초상화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이 그림은 그에게 초상화로서 명성을 얻게 해 준 의미 있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명단이 한 인물이 들고 있는 종이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967년 작품의 보수 과정에서 세척된 그림 속에서 이 명단 밑에 원래 그려졌던 해부도가 드러났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강렬한 명암 대비를 볼 수 있습니다. 해부되고 있는 대상물은 작품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얼굴과 박사의 손에도 빛이 비추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와 대조적으로 어둡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관람자들은 이 작품에서 강조되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야경>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시민민병대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지금은 <야경>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방위대(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였습니다. 코크 대장은 부대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렘브란트에게 주문했고, 렘브란트는 훈련을 위해 무기고를 나서는 대원들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현재 불리는<야경>이라는 제목과 달리, 이 작품은 원래 낮에 있던 일을 그린 것입니다. 아마도 강렬한 명암 대비 표현에 의해 어둡게 표현된 부분 때문에 ‘밤’이라는 선입견이 생긴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림이 걸려 있던 부대 내 장소에 난로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그림이 계속 더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이 그림은 그림을 그린 의도와 시간적 배경과 달리 <야경>이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그림은 두 번이나 관람객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렘브란트의 대표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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